“'노동자'하면 남성일 것 같고,
'노동운동'하면 남성의 운동이라는 고정관념이 되게 컸다는 걸 오늘 깨달은 것 같아요.”
5월 24일(토) <일하는 페미니스트의 그림일기> 참가자들과 함께 대구여성노동운동 공간 탐방을 했습니다.
이번 탐방은 “노동운동에서 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기록되고 말해지지 않는가?” 라는 질문에서 기획되었습니다.
대구여성노동자회 회원분들 중에 1980-90년대 대구지역 민주노조,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사업장에서 열심히 투쟁한 선배님들이 많기에 이분들의 목소리로 그때를 말하고 기억하고 현재로 이어가고 싶었습니다.
참가들의 목소리와 사진으로 그날을 기록합니다.

출발은 남산동의 전태일 열사 옛집에서 시작 했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유년시절을 보낸 대구 남산동 주택을 시민의 모금으로 복원한 공간입니다.

ㄴ 전태일 열사 옛집에서 찍은 단체사진. 이날 참가하지 못한 분들은 본인의 사진과 캐릭터를 합성하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정은정(전태일의 친구들 상임이사)님의 옛집 설명을 들으며 가슴이 울컥 했던 건 전태일 평전을 읽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내가 몰랐던 전태일 열사의 진심을 그 곳에서 만나게 된 순간 이었습니다.

김영숙 선배님이 일제 강점기의 강주룡부터 1980년대 동일방직, YH노조 까지 여성노동운동사를 짧고 굵은 강의로 안내해주셨습니다.
“1931년 강주룡 부터 지금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까지 쭉 맥을 이어왔는데 노동자들의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 항상 그 안에서 좀 더 은 삶을 살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있기 때문에 멈춰질 수가 없는 거다. 현실 사회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그 투쟁은 언제든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비가 오는 가운데 차를 타고 고성동 '근대산업 새로나길'로 이동했습니다.
‘근대산업 새로나길’은 대구 근대산업역사의 스토리를 담은 곳으로 북구청에서 조성한 곳입니다.

김영숙 선배님의 안내로 1980년대 섬유산업 공장의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현장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노동사목이 고성동 성당에서 노동자 교육을 하고, 1987년 가톨릭노동사목 사무실을 고성동 인근에 열어 노동자들을 지원했던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엄혹한 시절 경찰의 감시와 탄압에도 노동자의 곁을 지킨 선배님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합니다.

칠성동 삼성창조캠퍼스 안의 제일모직 기숙사 건물은 담쟁이로 덮여 있고 지금 카페, 식당 등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삼성 최초의 민주노조 투쟁의 중심이었던 여성 재직공의 이야기는 친구들과 밥 먹으러 오는 이 공간을 낯설게 했습니다.
“어느 공간과 어느 곳을 가든 어떤 눈으로 보느냐 누구를 기억하느냐는 다 다른 것”
“그 너머에 있는 우리가 봐야 될 것을 봤으면 좋겠다.”
“산업체 학생 . . 내 또래였던 그당시 중학교 때 우리가 집에 갈 때 등교하던 학생들이 생각이 났고. 되게, 네... 슬프더라고요.”

다음 코스는 염색공단에 위치한 '남선물산'의 옛터였습니다. 남선물산은 1,200여명 규모의 섬유업체로 1989년 여성노동자 다수가 참여하여 임금인상투쟁과 공동파업, 전노협 사수 투쟁을 한 민주노조를 대표하는 사업장입니다. 아직 남아있는 염색공장의 굴뚝들을 보며 그 시절 굴뚝농성을 했던 심정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마무리는 대구여성노동자회에서 했습니다. 1990년대∼200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사진으로 만나는 대구여성노동운동사, 세대를 잇다’ 전시물을 통해 만나고, 소감을 나누며 마쳤습니다.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단지 과거의 기억으로 남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지워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로고 함께 보고, 듣고, 말하며 기록해나가겠습니다.
“아니 분명히 이거 옛날 1960-70년대 이야기인데 왜 지금 2025년이랑 똑같지. 왜 자꾸 사람은 죽고 다치고 할까?”
“아직 내가 해야 될 게 많구나. 내가 이걸 조금이라도 알아가는 게 진짜 다행이구나 ”
“'노동자'하면 남성일 것 같고,
'노동운동'하면 남성의 운동이라는 고정관념이 되게 컸다는 걸 오늘 깨달은 것 같아요.”
5월 24일(토) <일하는 페미니스트의 그림일기> 참가자들과 함께 대구여성노동운동 공간 탐방을 했습니다.
이번 탐방은 “노동운동에서 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기록되고 말해지지 않는가?” 라는 질문에서 기획되었습니다.
대구여성노동자회 회원분들 중에 1980-90년대 대구지역 민주노조,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사업장에서 열심히 투쟁한 선배님들이 많기에 이분들의 목소리로 그때를 말하고 기억하고 현재로 이어가고 싶었습니다.
참가들의 목소리와 사진으로 그날을 기록합니다.
출발은 남산동의 전태일 열사 옛집에서 시작 했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유년시절을 보낸 대구 남산동 주택을 시민의 모금으로 복원한 공간입니다.
ㄴ 전태일 열사 옛집에서 찍은 단체사진. 이날 참가하지 못한 분들은 본인의 사진과 캐릭터를 합성하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정은정(전태일의 친구들 상임이사)님의 옛집 설명을 들으며 가슴이 울컥 했던 건 전태일 평전을 읽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내가 몰랐던 전태일 열사의 진심을 그 곳에서 만나게 된 순간 이었습니다.
김영숙 선배님이 일제 강점기의 강주룡부터 1980년대 동일방직, YH노조 까지 여성노동운동사를 짧고 굵은 강의로 안내해주셨습니다.
“1931년 강주룡 부터 지금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까지 쭉 맥을 이어왔는데 노동자들의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 항상 그 안에서 좀 더 은 삶을 살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있기 때문에 멈춰질 수가 없는 거다. 현실 사회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그 투쟁은 언제든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비가 오는 가운데 차를 타고 고성동 '근대산업 새로나길'로 이동했습니다.
‘근대산업 새로나길’은 대구 근대산업역사의 스토리를 담은 곳으로 북구청에서 조성한 곳입니다.
김영숙 선배님의 안내로 1980년대 섬유산업 공장의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현장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노동사목이 고성동 성당에서 노동자 교육을 하고, 1987년 가톨릭노동사목 사무실을 고성동 인근에 열어 노동자들을 지원했던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엄혹한 시절 경찰의 감시와 탄압에도 노동자의 곁을 지킨 선배님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합니다.
칠성동 삼성창조캠퍼스 안의 제일모직 기숙사 건물은 담쟁이로 덮여 있고 지금 카페, 식당 등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삼성 최초의 민주노조 투쟁의 중심이었던 여성 재직공의 이야기는 친구들과 밥 먹으러 오는 이 공간을 낯설게 했습니다.
“어느 공간과 어느 곳을 가든 어떤 눈으로 보느냐 누구를 기억하느냐는 다 다른 것”
“그 너머에 있는 우리가 봐야 될 것을 봤으면 좋겠다.”
“산업체 학생 . . 내 또래였던 그당시 중학교 때 우리가 집에 갈 때 등교하던 학생들이 생각이 났고. 되게, 네... 슬프더라고요.”
다음 코스는 염색공단에 위치한 '남선물산'의 옛터였습니다. 남선물산은 1,200여명 규모의 섬유업체로 1989년 여성노동자 다수가 참여하여 임금인상투쟁과 공동파업, 전노협 사수 투쟁을 한 민주노조를 대표하는 사업장입니다. 아직 남아있는 염색공장의 굴뚝들을 보며 그 시절 굴뚝농성을 했던 심정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마무리는 대구여성노동자회에서 했습니다. 1990년대∼200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사진으로 만나는 대구여성노동운동사, 세대를 잇다’ 전시물을 통해 만나고, 소감을 나누며 마쳤습니다.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단지 과거의 기억으로 남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지워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로고 함께 보고, 듣고, 말하며 기록해나가겠습니다.
“아니 분명히 이거 옛날 1960-70년대 이야기인데 왜 지금 2025년이랑 똑같지. 왜 자꾸 사람은 죽고 다치고 할까?”
“아직 내가 해야 될 게 많구나. 내가 이걸 조금이라도 알아가는 게 진짜 다행이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