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기] 한국옵티칼 고용승계로 가는 희망뚜벅이(2/7~3/1)
구미에서 국회까지 한국옵티칼 고용승계로 가는 희망뚜벅이가 시작되는 2월 7일 아침은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눈이 안오기로 유명한 대구에 하필 밤새 눈이 쌓일만큼 오다니. 차를 운전해 구미로 가려던 계획을 바꿔 기차를 탔다. 구미로 가는 창밖으로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사진. 장영식선생님
새하얗게 변한 공장 앞마당에 희망뚜벅이를 제안한 김진숙·박문진 지도위원, 고공투쟁 1년을 넘긴 박정혜·소현숙, 최현환지회장, 이지영사무장, 이희은, 정나영, 배현석 7명의 옵티칼 조합원을 비롯한 80여명의 참가자들은 기자회견을 진행한 후 350km 도보행진의 첫날을 시작하였다.
눈보라 속에 서서 꿀맛같은 떡을 하나씩 먹는 것으로 점심을 떼웠던 1일차 일정은 모두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그날의 눈은 만만치 않은 투쟁을 말하는 것도 같고, 연대의 아름다움과 승리의 희망을 예고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진. 장영식선생님
희망뚜벅이의 기억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7월 1일 박문진 지도위원이 영남대병원의 노조파괴와 해고에 따른 13년 투쟁에 끝장을 내고자 병원 본관 70m 높이 고공농성에 올랐다. 우린 안타까운 마음으로 병원 부근 멀리서도 보이는 꼭대기 반짝이던 불빛을 매일 보았다. 그리고 고공농성에 큰 영향을 주는 일기예보를 귀담아 듣게 되었다. 고공이 보이는 병원 광장에서는 퇴근집회가 열렸고, 매주 지역의 단체가 돌아가며 집중문화제를 준비했다. 우리도 문화제를 주관하며 사회도 보고, 때론 시도 읽으며 요청되는 역할에 무어라도 힘을 보태고자 노력했다. 그해 12월 23일 부산 호포역에서 ‘박문진 힘내라’고 쓴 부채한장 달랑들고 대구로 간다는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지도위원의 글이 트위터에 올라왔다. 그도 해고자이자, 암환자였다. ‘친구가 고공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걸어서라도 함께 하겠다’며 오신다는데, 그걸 읽는 우리들의 마음은 뜨거움으로 눈물이 났다.

사진. 박문진지도위원 페이스북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을 요구하며 평택에서 부산까지 걸었듯 그렇게 온몸으로 연대자를 불러모으며 해결을 촉구하는 희망뚜벅이가 시작되었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도착하던 날에는 200여명의 사람들이 광장으로 들어섰다. 멀리서 우리밥연대의 김주휘씨가 급한 부탁에도 한걸음에 달려와 떡국을 만들어 나누었고 광장에서는 춤을 췄다. 두 해고노동자 김진숙과 박문진 지도위원은 고공에서 잠시 눈물나는 포옹을 했고, 이듬해 2월 환한 웃음으로 승리해 땅으로 내려왔다. 그날의 함박웃음과 연대자들의 함성, 기쁨을 잊을 수 없다. 그건 모든 연대자들이 함께 만든 승리였다. 이후 김진숙지도위원의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까지 연대란 차를 타고 가 당사자들의 발언을 구경꾼처럼 듣고 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함께 하며 성장하는 것이란 걸, 즐겁고 유쾌하게 싸울 수 있다는 걸 몸으로 깨닫는 투쟁이었다.

사진. 박문진 지도위원 페이스북
고공투쟁 당사자였던 김진숙·박문진 지도위원은 누구보다 1년 넘게 고공에 있는 박정혜·소현숙 여성노동자들의 아픔을 이해했다. 그래서 작년 11월 23일부터 12월 1일까지 1차 희망뚜벅이에 이어 2차로 23일간, 60만보를 걸어 3월 1일 국회에 도착한 것이다. 희망뚜벅이가 걸어 서울로 가는 동안 박정혜·소현숙 두 분도 하루 2~3만보씩 고공에서 걸었다. 마지막 날 대구여노와 몇몇 시민들은 구미 옵티칼 공장에서 고공 두 여성노동자들과 공장뚜벅이로 긴 여정의 마무리를 응원하며 함께 걸었다.
희망뚜벅이는 그냥 걷는 것이 아니다. 연대를 확장시킨다. sns로만 보던 전국 장기 투쟁사업장 당사자의 이야기가 함께 걸으며 현장에서 살아 뚜벅이들에게 다가온다. 희망뚜벅이 안에는 투쟁과 연대가 살아 움직인다. 맨 앞에서 유쾌함으로 뚜벅이를 이끄는 두 분이 계셔서이기도 하다. 이번 희망뚜벅이에는 광장의 응원봉 시민들이 합류했다. 그들은 X(구 트위터)를 통해 전국 투쟁사업장 소식을 자발적으로 퍼 나르며 깃발을 들고 당당하게 바람을 가르며 나아갔다. 희망뚜벅이에서는 다양한 세대의 경험과 다름이 어우러지는 것을 고려하여 평등약속을 읽고 평등약속지킴이를 정해 문제제기가 있으면 토론을 통해 수용하고 반영이 되도록 하였다. 길 위 광장 민주주의가 실현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3월 1일 국회에 도착하던 날은 600여명의 연대자가 걸어서 함께 했다. 국회에 도착하여 각종 혜택과 수익으로 단물만 빼먹고, 수시로 정리해고를 하는 외국투자 자본의 횡포를 이번에는 국회가 나서서 반드시 해결하도록 촉구하였다. 한국옵티칼은 구미에서 생산하던 같은 물량의 제품을 평택 니토옵티칼로 그대로 옮겨가 생산했다. 신규직원을 뽑으면서도 단 7명의 조합원은 고용승계 못한다는 니토옵티칼의 만행을 가만두어서는 안된다. 희망뚜벅이가 보여준 연대의 힘이 더 커져 꽃피는 봄에는 승리해서 박정혜·소현숙 두 여성노동자가 땅으로 내려오길 바란다. 그래서 7명의 조합원들이 지상에서 완전체가 되어 공장마당 한가득 연대자들과 덩실덩실 춤을 추는 광경을 그려본다. 그날이 올때까지 대구여성노동자회는 연대의 깃발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공장의 주인은 노동자다 특혜만 받는 먹튀기업 out!
끝까지 투쟁해서 현장으로 돌아가자!!

사진. 장영식 선생님
[후기] 한국옵티칼 고용승계로 가는 희망뚜벅이(2/7~3/1)
구미에서 국회까지 한국옵티칼 고용승계로 가는 희망뚜벅이가 시작되는 2월 7일 아침은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눈이 안오기로 유명한 대구에 하필 밤새 눈이 쌓일만큼 오다니. 차를 운전해 구미로 가려던 계획을 바꿔 기차를 탔다. 구미로 가는 창밖으로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사진. 장영식선생님
새하얗게 변한 공장 앞마당에 희망뚜벅이를 제안한 김진숙·박문진 지도위원, 고공투쟁 1년을 넘긴 박정혜·소현숙, 최현환지회장, 이지영사무장, 이희은, 정나영, 배현석 7명의 옵티칼 조합원을 비롯한 80여명의 참가자들은 기자회견을 진행한 후 350km 도보행진의 첫날을 시작하였다.
눈보라 속에 서서 꿀맛같은 떡을 하나씩 먹는 것으로 점심을 떼웠던 1일차 일정은 모두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그날의 눈은 만만치 않은 투쟁을 말하는 것도 같고, 연대의 아름다움과 승리의 희망을 예고하는 것 같기도 했다.
희망뚜벅이의 기억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7월 1일 박문진 지도위원이 영남대병원의 노조파괴와 해고에 따른 13년 투쟁에 끝장을 내고자 병원 본관 70m 높이 고공농성에 올랐다. 우린 안타까운 마음으로 병원 부근 멀리서도 보이는 꼭대기 반짝이던 불빛을 매일 보았다. 그리고 고공농성에 큰 영향을 주는 일기예보를 귀담아 듣게 되었다. 고공이 보이는 병원 광장에서는 퇴근집회가 열렸고, 매주 지역의 단체가 돌아가며 집중문화제를 준비했다. 우리도 문화제를 주관하며 사회도 보고, 때론 시도 읽으며 요청되는 역할에 무어라도 힘을 보태고자 노력했다. 그해 12월 23일 부산 호포역에서 ‘박문진 힘내라’고 쓴 부채한장 달랑들고 대구로 간다는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지도위원의 글이 트위터에 올라왔다. 그도 해고자이자, 암환자였다. ‘친구가 고공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걸어서라도 함께 하겠다’며 오신다는데, 그걸 읽는 우리들의 마음은 뜨거움으로 눈물이 났다.
사진. 박문진지도위원 페이스북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을 요구하며 평택에서 부산까지 걸었듯 그렇게 온몸으로 연대자를 불러모으며 해결을 촉구하는 희망뚜벅이가 시작되었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도착하던 날에는 200여명의 사람들이 광장으로 들어섰다. 멀리서 우리밥연대의 김주휘씨가 급한 부탁에도 한걸음에 달려와 떡국을 만들어 나누었고 광장에서는 춤을 췄다. 두 해고노동자 김진숙과 박문진 지도위원은 고공에서 잠시 눈물나는 포옹을 했고, 이듬해 2월 환한 웃음으로 승리해 땅으로 내려왔다. 그날의 함박웃음과 연대자들의 함성, 기쁨을 잊을 수 없다. 그건 모든 연대자들이 함께 만든 승리였다. 이후 김진숙지도위원의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까지 연대란 차를 타고 가 당사자들의 발언을 구경꾼처럼 듣고 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함께 하며 성장하는 것이란 걸, 즐겁고 유쾌하게 싸울 수 있다는 걸 몸으로 깨닫는 투쟁이었다.
사진. 박문진 지도위원 페이스북
고공투쟁 당사자였던 김진숙·박문진 지도위원은 누구보다 1년 넘게 고공에 있는 박정혜·소현숙 여성노동자들의 아픔을 이해했다. 그래서 작년 11월 23일부터 12월 1일까지 1차 희망뚜벅이에 이어 2차로 23일간, 60만보를 걸어 3월 1일 국회에 도착한 것이다. 희망뚜벅이가 걸어 서울로 가는 동안 박정혜·소현숙 두 분도 하루 2~3만보씩 고공에서 걸었다. 마지막 날 대구여노와 몇몇 시민들은 구미 옵티칼 공장에서 고공 두 여성노동자들과 공장뚜벅이로 긴 여정의 마무리를 응원하며 함께 걸었다.
희망뚜벅이는 그냥 걷는 것이 아니다. 연대를 확장시킨다. sns로만 보던 전국 장기 투쟁사업장 당사자의 이야기가 함께 걸으며 현장에서 살아 뚜벅이들에게 다가온다. 희망뚜벅이 안에는 투쟁과 연대가 살아 움직인다. 맨 앞에서 유쾌함으로 뚜벅이를 이끄는 두 분이 계셔서이기도 하다. 이번 희망뚜벅이에는 광장의 응원봉 시민들이 합류했다. 그들은 X(구 트위터)를 통해 전국 투쟁사업장 소식을 자발적으로 퍼 나르며 깃발을 들고 당당하게 바람을 가르며 나아갔다. 희망뚜벅이에서는 다양한 세대의 경험과 다름이 어우러지는 것을 고려하여 평등약속을 읽고 평등약속지킴이를 정해 문제제기가 있으면 토론을 통해 수용하고 반영이 되도록 하였다. 길 위 광장 민주주의가 실현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3월 1일 국회에 도착하던 날은 600여명의 연대자가 걸어서 함께 했다. 국회에 도착하여 각종 혜택과 수익으로 단물만 빼먹고, 수시로 정리해고를 하는 외국투자 자본의 횡포를 이번에는 국회가 나서서 반드시 해결하도록 촉구하였다. 한국옵티칼은 구미에서 생산하던 같은 물량의 제품을 평택 니토옵티칼로 그대로 옮겨가 생산했다. 신규직원을 뽑으면서도 단 7명의 조합원은 고용승계 못한다는 니토옵티칼의 만행을 가만두어서는 안된다. 희망뚜벅이가 보여준 연대의 힘이 더 커져 꽃피는 봄에는 승리해서 박정혜·소현숙 두 여성노동자가 땅으로 내려오길 바란다. 그래서 7명의 조합원들이 지상에서 완전체가 되어 공장마당 한가득 연대자들과 덩실덩실 춤을 추는 광경을 그려본다. 그날이 올때까지 대구여성노동자회는 연대의 깃발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공장의 주인은 노동자다 특혜만 받는 먹튀기업 out!
끝까지 투쟁해서 현장으로 돌아가자!!
사진. 장영식 선생님